2009년 07월 19일
"女子에게 少年은 버겁다" 난 그래도 少年의 순수함이 좋아

아직도 십센티는 더 클 것 같은 소년 유지태가
이제는 사랑을 조롱할 수도 있을 만큼
농익을 대로 농익은 여자
이영애와 커플이 되어서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는 것이..
처음부터 나는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둘은 헤어졌다.
다행..이다
한때는 상우처럼..
지금은 은수처럼.
이제는 기억도 아련한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때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영화의 상우 같았었다.
그처럼 유머를 모르고
눈치없고..맹목적이고
답답했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하나.
비 오는 날 추리닝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그의 집 창문 앞에서 오기를 부리며 떨고 있던
내 모습.
그 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은수처럼 표독(?)했었다.
꽁꽁 언 발을 번연히 보면서도
그는 끝끝내 제 방으로 나를 이끌지 않았다.
이별에 대한 선전포고를 이미 했으니
그뒤의 감정수습은 모두 내 몫이라는 투였다.
당시엔 그 상황이 너무도 서러워
코 끝이 빨개지게 울었었는데..
이제 그 추억은 그냥...멋쩍을 뿐이다.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이 잊혀지고..
절대 용서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용서되면서
우리는 여자로 혹은 남자로 성장한다.
누구는 그러한 성장을 성숙이라고도 하고
타락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만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무조건 어른이 되고 싶던
비린 미성년 시절..
나는 찐한 사랑 한번에 여자가 될 줄 알았었고
실연은 절대로 안 당할 줄 알았었다.
이제는 그런 내 바램들이
당치않은 기대였던 것을 안다.
사람들은 언제나 당면한 입장에 서서
상황을 이해하는 생리가 있다.
상우의 나이를 지나 은수의 나이에 서니,
상우보단 은수가 이해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순리다.
"라면이나 먹자".."자고 갈래"..라고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은수의 말을 이해 못하고
정말 라면이나 먹고, 잠이나 자는 상우는
어쩌면 처음부터..
은수에겐 버겁게 순수한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날긋하게 닳은 여자에게
순수는 반갑지 않다.
순수가 사랑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순수를 동경한다.
사랑이 운명이나 숙명이 아닌
일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믿는
대개의 경험있는 사람에겐
(사랑의 열정을 몇번씩 반복해서 느껴 본 사람)
순수는 정돈된 일상을 방해하고
그로 인해 사랑을 좀슬게 한다.
상우의 순수가 은수의 일상을 방해하고
사랑을 버겁게 느끼게 하는 요소는 곳곳에 있다.
늦잠을 자고 싶은데 상우는
제가 한 밥을 먹으라고 재촉하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새벽녘 서울에서 강릉길을 한달음에 달려와
포옹을 요구하며..
맨정신으로 약속을 하고 찾아와도 안 만나줄 판에
술 취해 급작스레 찾아와
철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른다.
게다가 엉엉대며 울기까지...
그 대목에 이르면 은수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은근슬쩍 짜증이 인다.
저만 아프고 저만 힘들지.
어린 남자는 그렇게 이기적이다.
사랑만 하기에 인생은 너무도 버겁다.
다수의 사람들은 은수가 상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현실적인 가치 기준의 잣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박봉에 초라한 개량 한옥에서 사는
홀시아버지와 매서운 시고모를 옆에 두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모셔야만 하는
정말 누가봐도 최악의 결혼조건을 가진 그 남자와
연애는 몰라도
결혼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계산이
은수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이유에 반박한다.
은수는 그 남자의 처지보다
무료해지고,
생계가 치명적인 걸 이미 아는 여자에게
사랑만이 전부인 남자는 부담스러웠을 뿐이다.
이제 이 나이에
"사랑이...어떻게 변하니?"
라고
상우처럼 묻는 남자가 내게 온다면..
나 역시 은수처럼
당연히 그 남자를 피해갈 것이다.
아직도 사랑이 안 변한다고
사랑이 전부라고(직장마저 그만둘 만큼)
생각하는 남자와
격한 인생의 긴 여정을 어찌 헤쳐나가겠는가.
은수와 상우의 결별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도 다행한 일이다.
- 드라마 작가 노희경-
나이 많은 나쁜 여자 이영애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착한 남자 유지태가 마냥 좋았다.
그리고 조금 불쌍하고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그렇게 단순했다.
그리고 어제, 노희경 작가의 최근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
를 읽다가 다시금 이 영화가 생각나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와.. 그동안 난 참 많이 생각이 변하고 성장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女子와 少年으로 분류하기는 다소 과장된면이 있지만
아직은 평범하지 않은 3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까?
괜히 노희경 작가의 글 한구절 한구절이, 영화의 장면 장면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의 은수의 선택도
노희경 작가의 예쁘지만 현실적인 글도
공감이 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소년의 그 순수함이 좋고
사랑에 모든것을 내던질 수 있을 것 같아보이는 그 무모함이 섹시하다고 생각하며
가슴 설렌다
* 소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늙은 듯 하지만
영화 속 상우(유지태)보다 어리므로 내 남자친구를 소년이라고 부르겠다.
아. 지금의 내 나이가 영화 속 상우의 나이정도 되겠구나. //
가끔은 은수처럼, 그리고 노희경작가의 글처럼
소년의 순수함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일로 지치고 우울할 때면
마냥 긍정적이고, 모든 일이 결국은 잘 될것이라고 믿으며 밝게 웃는 소년
아무리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있더라도
1시간 정도 나와 통화 만으로도, 가벼운 뽀뽀 만으로도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기분이 좋아지는 소년
우리의 사랑은 변할리 없으며
훗날 자신을 닮은 예쁜 아기를 함께 키울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는
감당할 수 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소년
그런 소년의 모습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철없는 나보다도
삶의 무게를 아직 모르는 것 같은
소년의 순수함이 가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소년이 좋다.
사랑에는 모두 시작과 함께 끝이 있다고 믿으며
사랑하는 내내 몸과 마음을 사리고,
사랑의 끝이 다가옴을 감지했을 때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기 위해
자신을 웅크리는 "어른 남자" 보다는
아직도 사랑이 안 변한다고
혹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은 변하더라도 우리의 사랑은 특별하다고 믿으며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직은 조금 어리지만 순수한 남자.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내던지며
세상 모두에게는 자존심을 세울지언정,
널 사랑함에 있어서는 자존심따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착한 남자.
그런 소년이 좋다.
그리고 소년과 사랑하다보니 나도
거짓없고 꾸밈없이 영원한 사랑을 믿는 작은 일에도 가슴 설레는
어린 소녀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소년과의 미래를 꿈꾼다 ♥
그럴일은 없겠지만 <봄날은 간다2> 가 만들어진다면,
은수가 상우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그럼 너무 식상한 러브스토리가 되려나?
어쨌든 식상하더라도 난 해피엔딩이 좋더라. -_-
+
염장질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은근 글 쓰다보니 손발이 오글오글 ~_~
사랑하시는 분들 모두 예쁜 사랑 계속 쭈욱 ♡
봄날은 간다 영화와 노희경에세이 책 이야기이지만...
염장질 성격이 은근 강해졌으므로 연애 밸리로 :)
# by | 2009/07/19 01:00 | Cinematograph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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