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05일
여자, 돈을 벌다.
여자, 돈을 벌다.
지난 학기 한 수업시간에 국내 유명한 취업사이트의 임원 분이 오셔서 3-4학년 경영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관련 특강을 해주셨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열심히 경청했지만,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조금씩 납득이 가지 않는 그 분의 특강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 중 몇 가지 내용을 말하자면,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3-4학년 들은 항상 언제든 면접을 볼 준비가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정장은 아니더라도 세미 정장 정도의 옷차림을 유지해야 하고,‘특히’여학생들은 화장을 꼭 하라는 것이었다.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뭐라고?’ 어떻게 취업 특강을 위해 모셔온 강사님이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나 눈이 휘둥그래져서 강의를 듣고 있는데 이어지는 강의 내용은 점점 더 가관이다.
남자에 비해 여자의 경우 외모가 면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높다는 것을 몇 번이나 강조하며 여학생들에게 외모에 시간과 노력을 마구 투자하라는 망언에 이어 실제 면접이 진행되는 상황을 가상해서 모의 인터뷰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역시나 평이하고 누구나 예상할 만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학생들도 무난하게 대답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한 여학생의 차례가 되자 질문의 주제는 돌연 ‘커피심부름’ 으로 바뀌었고, 질문을 받은 여학생은 당황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자네가 우리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한 동안은 커피심부름 만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나?” 라는 강사 분의 질문에 그 여학생은 한 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은“아니오, 커피심부름 만을 해야 한다면 입사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강사 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래서 문제라는 식으로 그 여학생을 추궁하는 것이었다. 커피심부름 관련 질문을 하는 임원진의 진정한 의도는 그 여성이 커피를 탈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회사에 충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태도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사실 커피를 타는 것은 그렇게 큰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커피를 탄다는 문화의 역사성을 고려했을 때 절대‘여직원이 커피를 타는 것’은 단순한 커피를 타는‘심부름’의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 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강사 분은 커피심부름과 관련된 모의 인터뷰 질문을 왜 굳이 남학생에게 하지 않고 여학생에만 던졌을까? 그 사고 근저에는 커피심부름은 여성이 해야만 하는, 바로 그것이 회사와 상사에 대한 예의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유쾌하지 못했다.
내내 찜찜한 마음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데 마지막에 그 강사 분은 또 어이없는 한마디를 던지셨고, 순간 교실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싸해졌는지, 나 혼자만 싸해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여학생들 남학생들에 비해 취업이 안 된다고 남녀 차별이라고 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 동안 여자들의 잘못도 매우 큽니다. 기껏 열심히 시간들이고 돈 들여서 면접보고 입사시키고 나면 몇 년 안 다니고 결혼한다고 그만두는 여자들을 몇 해씩 경험한 인사담당자들이 남자를 뽑고 싶겠습니까 여자를 뽑고 싶겠습니까? 자꾸 성 불평등하다고 하지만 그 불평등을 고치려면 여학생들 태도부터 고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순간 머리 속이 멍해졌다. 면접과 입사를 지나 직장인 여성에게 존재하는 온갖 불평등적인 요소들이 모두‘결혼 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안일한 여자들의 태도’ 문제로 귀결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결혼과 동시에 직장 생활을 2순위로 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들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전자의 경우라 하더라도 그 여성이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낸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문제이지, 그것을 그 여성 개인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예컨대 언젠가 어느 여성의 책에서 이런 경험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여성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회식자리, 즉 술자리가 갖는 의미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회사의 회의실에서 이뤄지는 내용이 전부가 아님을, 술자리에서 가볍게 오가는 듯한 사소한 말 들이 네트워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며 회사 내부의 이야기가 비공식적으로 얼마나 많이 오고 가는지 알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여성은 언제나 회식자리에서 끝까지 남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제가 발생했다. 1차, 2차, 3차로 계속 되던 회식자리에 남은 여성은 그 여성 한 명뿐이었고, 왠지 모르게 남은 남성들이 그 여성을 집으로 들여보내려는 분위기를 느낀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남은 남성 동료와 상사들은 접대 여성이 있는 룸싸롱과 같은 곳을 가고 싶었던 것이고 그 여성이 눈치 없이 끼어있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 뒤로 그 여성은 한 동안 회식자리에서 일찍 자리를 뜨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점차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회사 관련된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을 확연히 느꼈다는 안타까운 경험담이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소외된 여성들이 회사 내에서 정착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데는 분명 그녀들을 먼저 밀어낸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가 존재한다. 먼저 여성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할까 두려워 잔뜩 밀어 버려 놓고는, 이제는 그녀들이 스스로 조직을 버리고 배신한다고 둘러대기까지 하다니. 어이가 없지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서 나의 몇 년 후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술도 잘 못하고, 남성 중심적인 회식문화에 익숙하지도 못한 내가 과연 회사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나약한 내 모습이 바로 떠오르면서 순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왜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은 전혀 하지 않는 고민을 가슴에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까? 남성중심적인 직장문화, 어디서 시작된 걸까?
남녀공학 대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우리 수업을 들으면서 그 동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사소한 것들이 눈에 거슬려서 답답한 경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남성들의 여성을 향한 이중적인 잣대이다. 능력있고 똑똑한 여성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그런 여성이 동료로서 적합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녀가 자신들의 연애 대상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연애 대상으로서의 그녀는 설사 똑똑하더라도 똑똑한 티가 나면 안되고 적당히 귀여워야 하며 어린아이 같이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한다. 능력있는 남성을 동료로서, 또 이성으로서 높게 평가하는 여성들과는 달리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남성들을 경험한 여성들은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처럼) 이에 대한 문제 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남성들의 이중적인 잣대 중 연애 대상으로서의 잣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데 더 열심히 인 것 같아 보이는 여성들도 꽤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연애 대상으로서의 잣대에 맞추는데 익숙해진 그녀들은 남성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면서 행복한 대학 생활을 하겠지만, 곧 만나게 될 기존의 남성들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남성들로 가득한 직장에서 아무 문제없이 적응하고 남성 ‘동료’들과 어울려서 직장 생활을 평등하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들의 잣대에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 나만의 잣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오롯이 나를 강하게 만들고 나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나만의 잣대를 만들자.
1년 쯤 전 여성커리어와 리더십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썼던 쪽글이다. 경기가 최악이라는 올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요즘 마음은 조금 불안한게 사실이다. 1년 전 저 쪽글을 쓸 때 까지만 해도 사실 나도 모르게 '난 보통 여자들 보다 더 똑똑하면 되' 라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이미 경쟁 상대가 여성으로 한정되어 여성끼리 경쟁해야 하는 현실 또한 안타깝다.) 하지만 주변의 선배들이나 동기들을 보면 아무리 봐도 스펙이나 인성이나 모든 것이 우월한데도 불구하고 딱 한가지 성별이 문제인 것(여자인 것) 말고는 부족한 것이 없는 여자 선배들의 취업 실적은 남자 선배들의 취업 실적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우는 학교의, 취직이 가장 잘 된다는 경영대의 여학생들이 이정도니 다른 여학생들은 그 상황이 더 심각할 것이다.
물론 운이 좋게 어떻게든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 다음에 만나는 세상도 여자들에게 항상 불리할 것이며, 여자들의 절반은 부적응의 경험을 하고 시기 적절한 현실의 도피처로써의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기업에서는 여자들은 뽑아놓으면 결혼 한다며 회사를 그만둔다고 생각해 이듬 해 여성 비율을 좀 더 줄이고 싶어하겠지. 그들이 여자들을 간접적으로 내쫓은 줄은 모르고 말이다. 불경기일수록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의 문은 터무니 없이 좁아진다고 한다. 올해 취업 준비하는 대학생, 혹은 졸업생 여자분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남자분들도 함께 화이팅!)
# by | 2009/01/05 01:59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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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란 주색잡기 때문에 남녀평등은 절대 안와요.
어쩜 저말도 돈받고 와서 한 말일텐데-_-;;
근데 취업현장에서 얼마나 남녀차별이 심한지는 저도 주변에서 듣고 경악했고 , 고등고시에 힘들게 붙어놨더니, 여자가 솔직히 그자리에 있으면 피해가 된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도 있데요-_-;;;; 완젼 정말했찌요; 진짜ㅠ_ㅠ;
인사담당자의 말이 비록 잘못된것이 분명하고, 그러한 책임은 사회와 고용주측에 있는것이지만, 회사입장에서 결과만 보자고 하면 여자를 꺼릴수도있겠지요, 잘못된 인식이지만 정말 효율만을 따지는 측면에서 보면요,
하지만, 여자라서 오게되는 단점이 있는만큼, 회사 혹은 사회에서 여자기에 할 수 있는 일, 여자기에 잘 할 수 있는 일 (물론 커피 타는게 아닙니다-_-)도 분명히 있고, 내가 여자기에 세상을 더 좋은쪽으로 바꿀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을거라는 생각에 쥐는 힘내기로 했답니다;+_+ 우리 같이 힘내요+_+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여성이 잘하면 된다느니 하지만, 여성이 여성으로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여성성을 버려야만 하며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극히 적은 수와, 남성과 같은 위치일지라도 적은 연봉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지요. (세상의 기준은 수치가 아니지만, 아직도 여성차별이 만연한 이때에 수치를 무시하는 건 말이 안되니까요)
커피 타오기를 시키려면 개인비서를 뽑아야죠. 뭣보다 제일 좋은 건 직접 타먹는 차가 제일 맛있습니다'ㅅ'
훗날 이렇게 여성이니 남성이니 운운하지 말고 모두를 '사람'과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ps. 쓸떼 없는 사족을 남기자면,
이글을 보며 백지영 3집의 Silly Sally라는 노래를 듣고 있는데 그 곡 후렴부에
나오는 가사(?)가 주인장님의 필명과 같군요..-_-;